김삼
몇 년 전 한국서 휴가를 보내며 경향 각처의 몇몇 교회를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 교회음악은 필자가 이민을 오던 20여 년 전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발전의 주된 에너지는 테크닠 및 표현의 이중적 발전과 창작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일반음악 면에서, 과거 한국음악은 테크닠은 좋지만 표현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국제 음악 환경에서 연구 활약하던 유능한 음악인들이 한국 음악계 전반에 고루 진출해, 서울과 지방 사이의 골이 메워지고, 교회도 이들을 적극 수용하면서 테크닠과 표현이 '평준화'돼 가고 있다.
창작 면에서는, 국제저작권법이 한국에서도 제대로 발효되어 서구교회음악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 곡 개발에 힘쓰게 되면서 나름의 좋은 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방한 당시 몇 교회에서 들은 곡들이 그러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처에서 그렇듯, 한국도 전통 교회음악과 CCM 내지 현대 경배찬양곡의 병존 현상도 두드러진다.
크고 작은 교회들이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교회 존립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전통적 음악과 CCM 사이의 벽은 아직도 두텁다. 찬양대와 CCM은 늘 서로 독립돼 있고 때로는 서로를 경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국 교회음악이 전반에 걸쳐 평균적으로 국제 수준으로 떠올랐냐면, 그건 아니다. 교인수 약 3만인 어느 수도권 교회 찬양대가 펴낸 최신 음반을 입수해 들어 봤는데, 유감스럽게도 졸작으로 느껴졌다. 미국 음대 출신의 지휘자가 100여 명의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를 감독/지휘를 했는데, 지휘자 자신의 특징 견식이나 레퍼토어에 제약 받았는지, 선곡이 자유롭지 못해 전반적으로 답답하고 이렇다 할 감흥을 주지 못했다.
화려하고 영롱한 클래식 합창성가곡을 간간히 펼쳐 부른 것도 아니고 좀 난해한 현대 합창곡을 삽입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두루뭉실했다. 다만 성가대의 합창 실력은 상당했고 오케스트라도 수준급이었다. 모처럼 만드는 음반을 과연 이 정도 '적당 수준'의 레퍼토어를 갖고 막대한(?) 돈을 들여 가며 해야 했을까? 교회 홍보용으로도 마이너스에 가깝다고 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특히 실망한 건, 녹음과 출반 수준. 가사도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고 허공중의 웅얼거림처럼 맴돌 뿐이었다. 제목만 갖고 짐작할 뿐이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길이 없다. 가사 모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CD 주얼케이스 속 재킷 디자인만 근사할 뿐이었다.
이 참에, 한국과 한인 교회음악인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교회음악에서 치명적으로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닌, 텍스트의 표현(articulation)이다. 순수기악을 제외한 성악의 경우, 성경말씀이나 신앙고백에 가까운 가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교회음악은 거의 무의미하다.
소리는 극명해야 한다. 성가대는 회중에게 가사전달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할수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음대에서 배우는 외국어 발음법을 한글에도 잘 적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멘', '영광' 등 한글받침의 여운 처리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외국 지휘자나 발성교수, 음악목사 등이 매우 철저히 다루는 부분의 하나가 가사의 articulation이라면, 한국의 찬양대/교회합창단 지휘자들이 대체로 가장 소홀히 하는 분야라는 점이다.
소리들 중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음악에 치여, 부르고 듣기에 흐리멍덩한 소리로 사라져 버리는 셈이다.
선거후보나 정치가의 생명은 확실한 연설이다. 고도로 의사전달이 훈련되고 잘 준비된 정치후보나 연사들처럼, 노래 가사의 전달도 분명해야 한다. 지휘자는 성가연습 중 수시로, 귀가 잘 발달된 대원을 시키든지, 아니면 본인이 직접 떨어진 거리에서 가사 발음을 들어보고, 잘 분별되지 않는 자음과 모음 발음은 몇 번이고 연습시켜야 옳다.
찬양이 '짜냥', 천국이 '청국', 사망이 '야망'으로 들려선 안된다. 그래도 가사 전달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협력을 받아 되도록 매 주일의 성가 찬양곡 가사를 주보에 실어야 한다. 주보에 성가가사를 꼬박꼬박 실어주는 자상한 목회자야말로 교회음악과 찬양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바람직한 사역자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주보에 공간이 부족하면 사이종이(간지)로라도 끼울 수 있다. 성가음악회, 칸타타연주회 때도 수고스럽겠지만 순서지에 가사 전체를 실려야 옳다. 특히 음반을 낼 때는 절대로(!), CD 재킽 북에다 모든 낱곡의 가사를 수록해야 한다.
"하나님께 직접 바치는 것이므로 회중은 가사 내용을 몰라도 된다"는 발상은 엄청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회중 중심이지, 성가대나 지휘자 중심이 아니다.
'아멘'의 발음을 다시 살펴 보자. 흑인영가 등 특수효과를 위한 순간 받침처리의 특수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멘'의 '멘'은 '메---ㄴ'식으로 모음 'ㅔ'를 늘여준뒤 (적당한 길이의 미분이 가능한) 마지막 음표에서 니은 받침('ㄴ'/n)의 여운을 확실히 처리해줘야 한다. 다른 받침소리도 이에 준한다. 이를테면 온음표의 경우 4분음표, 2분음표일 경우 8분음표 단위로 나눈 마지막 음표에서 마무리하는 식이다.
곡의 끝에 붙은 장박 아멘인 경우 물론 'ㄴ'(n)도 상당량 길어진다. 그것은 은은한 메아리와도 같다. 그러기 위해선, 지휘자가 'ㄴ'의 순간을 손으로 섬세하고 미묘하게 표시해 줘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 주는 지휘자가 그리 흔하진 않다. 이 사인을 해 줄 때 성가대원 중에는 아예 허밍을 하여 'ㄴ'이 아닌 'ㅁ'에 가깝게 발음하는 대원도 있다. 그러나 'ㄴ'(n)은 입술이 약간 벌어지고 입천장에 혀가 붙는 반(half) 열림소리 내지 '절반 허밍'의, 완벽한 것이어야 한다.
미음받침 'ㅁ'과, 허밍에 가까운 이응받침 'ㅇ', 니은받침 'ㄴ' 등 반열림소리들은 평소 고도의 훈련을 요한다. 허밍은 그야말로 허밍이어야지, 입천장이 낮은 '흐밍'이 돼선 안 된다. 입 속에 호두알을 문 양 구강을 최대한 열고, 혀끝은 아래 치열에 납작하게 대면서 소리의 초점을 바깥 인중 쪽으로 쏘아 내듯 튀겨 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럴 때 입속 코 근처 부분이 떨리거나 간지러운 사람들도 있다. 화살처럼 순간 액센트를 넣은 허밍과 부드러운 허밍을 둘다 연습하도록 한다.
허밍과 두성의 가장 완벽한 훈련 한 가지는 하품을 일부러 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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